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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of Water and Plants (1837) — Thomas Fearnley

▲ The Garden of the Tuileries on a Spring Morning (1899) — Camille Pissarro
▲ Study of Water and Plants (1837) — Thomas Fearnley
▲ The Garden of the Tuileries on a Spring Morning (1899) — Camille Pissarro
1. 2000점이라는 숫자
2. 지베르니 연못을 직접 만들었다
3. 백내장이 진행되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나
4. 대형 패널 연작. 오랑주리 미술관 이야기
5. 죽기 3개월 전, 마지막 수련
클로드 모네(1840~1926)는 수련을 250점 이상 그렸다.
수련만 그런 게 아니다. 건초더미를 25점 그렸고, 루앙 대성당을 30점 그렸고, 템스강을 100점 넘게 그렸다. 같은 대상을 다른 시간, 다른 빛, 다른 계절에 계속해서 그리는 것이 모네의 방식이었다.
수련 연작은 그 가운데서도 특별하다. 30년에 걸쳐 그렸고, 시력이 점점 나빠지는 시간 동안 계속됐고, 그의 죽음으로 끝났다.
2000점이라는 숫자
모네는 평생 약 2500점의 그림을 남겼다. 그 중 수련과 지베르니 정원을 그린 그림이 250점 이상이다. 단일 주제로는 압도적으로 많다.
▲ 클로드 모네, 〈수련〉, 1906년,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소장.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처음 수련을 그린 건 1896년경이다. 마지막 수련을 그린 건 1926년, 모네가 죽기 직전이다. 30년이다.
왜 이렇게 오래 같은 것을 그렸을까. 모네의 답은 간단했다: "물 위의 빛은 매 순간 다르다. 같은 연못을 그린 게 아니다. 매번 다른 빛을 그린 것이다."
지베르니 연못을 직접 만들었다
파리에서 80km 떨어진 지베르니. 모네는 1883년 이 마을로 이사했다.
처음에 연못은 없었다. 모네가 땅을 사서 물길을 돌려 연못을 만들었다. 일본 목판화에서 본 수련과 나무다리 구성을 직접 구현했다. 정원 설계에만 수년이 걸렸다. 당시 지역 주민들은 "외국 식물로 물을 오염시킨다"며 반대했다. 모네는 설득하고 보상금을 지불했다.
연못이 완성된 건 1893년 이후였다. 그때부터 수련 연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모네는 이 연못 앞에 대형 작업실을 따로 지었다.
정원은 지금도 있다. 매년 50만 명 이상이 방문한다.
백내장이 진행되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나
모네는 1912년경부터 백내장 증상을 느끼기 시작했다. 1922~1923년에는 오른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됐다. 색이 제대로 구별되지 않았다.
이 시기 그린 그림들을 보면 전과 확연히 다르다. 윤곽이 흐릿하고, 색이 붉은 계통으로 치우쳐 있다. 백내장 때문에 노란색이 더 강하게 인식되면서 색조가 달라진 것이다.
1923년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색각이 어느 정도 회복됐지만, 이번엔 반대로 파란 계통이 너무 강하게 보였다. 교정 안경을 맞추는 데 수개월이 걸렸다. 그 사이에 그린 그림들은 또 다른 분위기를 갖는다.
미술사가들은 이 시기의 그림들을 모네의 '후기 양식'으로 분류한다. 형태보다 감각을 앞세운, 추상에 가까운 작품들이다. 일부는 20세기 추상표현주의의 선구로 평가받기도 한다.
대형 패널 연작. 오랑주리 미술관 이야기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 모네는 프랑스 정부에 대형 수련 패널화를 기증하겠다고 제안했다. 당시 수상 조르주 클레망소의 친구이기도 했다.
조건은 하나였다. 작품을 보관할 전용 공간을 만들어달라는 것.
프랑스 정부는 오랑주리 미술관을 개조해 타원형 전시실 두 개를 만들었다. 길이 약 100m. 천장은 유리로 만들어 자연광이 들어오게 했다.
모네는 이 공간에 맞춰 대형 캔버스 8점(총 길이 약 91m)을 제작했다. 관람객은 타원형 공간 중앙에서 360도로 수련을 보게 된다. 바닥에 앉아 보도록 설계됐다.
파리를 간다면, 루브르만 가지 말고 오랑주리에 가야 한다.
죽기 3개월 전, 마지막 수련
모네는 1926년 12월 5일 사망했다. 폐암이었다. 86세였다.
죽기 전해 여름까지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렸다는 기록이 있다. 수련 패널화 일부를 마지막까지 손보고 있었다. 전시실 조명 각도에 따라 보이는 게 달라진다며 신경을 썼다.
30년 전 처음 연못을 만들었을 때와 같은 연못 앞에서.
시력이 나빠진 눈으로 본 수련이 더 추상적이고 자유롭다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냥 이렇게 생각한다. 30년 동안 같은 연못을 들여다보면서, 거기에 있는 것을 다 그리지 못했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계속했을 것이다. 틀릴 수도 있다. 그냥 그림 그리는 게 습관이 됐을 수도 있고. 이유가 뭐든 결과는 같다.
※ 이미지 출처
- Water Lilies, Claude Monet, 1906, Art Institute of Chicago.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관련 글: [모나리자 미소의 비밀](링크) | [뭉크의 절규. 그가 들은 것](링크)
6. 지베르니의 정원. 모네가 직접 만든 그림의 재료
모네는 1883년 지베르니에 정착하면서 정원을 직접 설계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꽃을 심은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기 위한 공간을 만든 것이다. 연못의 위치, 물의 깊이, 어떤 식물을 어디에 심을지까지 모네가 직접 결정했다. 일본 목판화에서 영감을 받은 초록 다리도 그때 만들어졌다.
수련을 처음 주제로 잡은 것은 1890년대였다. 처음에는 풍경화의 일부로 연못을 그렸다. 그러다 점점 수면 자체에 집중하게 됐다. 하늘, 나무, 다리 같은 요소들이 사라지고 물과 수련만 남은 그림들이 나온 것은 1900년대 이후다. 모네는 같은 연못을 수백 번 그렸다. 같은 장면을 계속 그린 것이 아니라, 빛과 계절과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연못을 기록한 것이다.
지베르니 정원은 지금도 모네가 남긴 설계대로 관리되고 있다. 매년 봄부터 가을까지 수련이 피고, 세계 각지에서 방문객이 온다. 연못 앞에 서면 모네가 봤던 것을 직접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네가 포착한 빛의 질감은 그림 안에만 있다. 실물 연못보다 그림이 더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유가 있다.
7. 시력을 잃어가며 달라진 그림
모네는 1912년 백내장 진단을 받았다. 두 눈 모두 시력이 나빠지고 있었다. 초반에는 수술을 거부했다. 색이 달라 보일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도 그림은 계속 그렸다. 1915년 이후의 수련 연작을 보면 형태가 더 흐려지고 색이 더 두텁게 칠해진다. 빛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서 달라진 붓질이다.
1923년 모네는 결국 오른쪽 눈 수술을 받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색이 너무 선명하게 보여서 문제였다. 수술 이전에 그린 그림들이 이제는 다르게 보였다. 모네는 그림들을 수정하려 했고, 일부는 스스로 파기했다.
이 시기의 수련 그림들은 완벽한 재현이 아니라 감각의 기록이다. 눈이 정확하게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뇌가 기억하는 색과 빛을 손이 옮겼다. 그 결과 어떤 그림들은 추상화처럼 보인다. 모네 자신은 추상을 의도하지 않았지만, 시력 저하가 결과적으로 현대 추상미술과 연결되는 그림들을 만들어냈다. 폴록과 로스코 같은 추상표현주의자들이 모네의 만년작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8. 오랑주리 미술관의 타원형 방들
대형 수련 연작인 〈수련〉 연작 8점은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총 길이 91미터에 달하는 이 연작은 두 개의 타원형 방을 360도로 둘러싸고 있다. 모네가 직접 설계에 참여했고, 빛이 위에서만 들어오도록 설계됐다. 그림 안으로 들어간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다.
이 방에 들어가면 앉아서 오래 머무르게 된다. 사방이 수련 연못이다. 아침 햇살, 정오의 빛, 저물녘의 빛이 각 패널마다 다르게 포착되어 있다. 걷지 않아도 시간이 흐른다. 모네가 의도한 것이 이것이었다. 관람객이 그림 안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잠시 머물도록.
나는 이것이 회화가 할 수 있는 가장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이나 영상이 할 수 없는 것. 시간과 빛의 기억을 물감으로 고정해서, 보는 사람이 다시 그 안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 모네는 2,000점의 수련 그림으로 그것을 했다.
9. 수련 연작과 추상표현주의
모네의 후기 수련 그림들은 1950년대 뉴욕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모네의 수련에서 폴록, 로스코, 드 쿠닝의 선례를 봤다. 그림의 크기, 화면을 채우는 색채의 물결, 구체적 대상이 사라지는 방향성. 이것들이 추상표현주의와 닮았다.
모네 자신은 추상을 의도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수련 연못을 그리려 했다. 하지만 시력이 나빠지면서 형태가 흐려지고 색이 주도하는 그림이 됐다. 그 결과가 결국 새로운 것이었다. 의도하지 않은 혁신이 의도된 혁신보다 더 멀리 가기도 한다.
10. 연작이라는 방법
모네는 연작(series) 작업을 처음 체계화한 화가 중 하나다. 루앙 대성당 연작, 건초더미 연작, 포플러 연작, 수련 연작. 같은 대상을 다른 시간, 다른 계절, 다른 빛 조건에서 반복해서 그렸다. 이것이 인상주의의 핵심 관심사인 빛의 변화를 체계적으로 탐구하는 방법이었다.
연작으로 그리면 개별 그림이 더 풍부해진다. 루앙 대성당을 하나만 보는 것과, 아침·낮·저녁 버전을 함께 보는 것은 다른 경험이다. 모네는 하나의 진실이 아니라 여러 순간의 진실들이 있다는 것을 연작으로 보여줬다. 그 발상이 현대 미술에서 연작과 시리즈 작업의 원형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