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그르의 〈그랑드 오달리스크〉를 보면 뭔가 이상하다. 저 여성의 척추가 너무 길다. 인체 해부학적으로 불가능한 척추다. 처음 전시됐을 때도 비평가들이 "척추뼈가 세 개 더 있다"고 지적했다. 앵그르가 해부학을 몰랐을까. 아니다. 그는 완벽한 기술의 화가였다. 그렇다면 왜 일부러 틀리게 그렸을까.

▲ The Storm (1880) — Pierre-Auguste Cot
▲ The Storm (1880) — Pierre-Auguste Cot
목차
1. 오달리스크는 누구인가
2. 척추 세 개의 미스터리
3. 앵그르의 완벽주의
4. 동방 취향, 오리엔탈리즘
5. 루브르에서 이 그림이 속한 맥락
▲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그랑드 오달리스크〉, 1814년, 루브르 박물관 소장.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1780~1867)는 다비드의 제자였다.
신고전주의의 계보를 이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신고전주의라고 부르기에 너무 감각적이었다. 드라마틱하지는 않지만, 관능적이었다. 그 때문에 당시 비평가들이 그를 신고전주의에도 낭만주의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화가로 봤다.
오달리스크는 누구인가
'오달리스크(odalisque)'는 오스만 제국의 하렘(harem)에 속하는 여성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원래 터키어 단어에서 왔다.
유럽의 화가들은 하렘이라는 공간에 매혹됐다. 그것은 유럽 남성들이 실제로 가본 적 없는, 그래서 상상으로만 그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앵그르도 이스탄불에 간 적이 없었다. 그는 여행 기록과 상상으로 이 장면을 그렸다.
이 시기 동양에 대한 유럽의 관심을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한다. 그 시선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가, 얼마나 환상적이고 에로틱한 방향으로 쏠려 있는가에 대한 비판이 20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나왔다.
척추 세 개의 미스터리
1814년 살롱에 출품했을 때 비평가들이 즉시 지적했다. 저 여성의 몸은 인체 비례로 불가능하다. 특히 허리에서 엉덩이까지의 길이.
해부학자들의 계산에 따르면 실제 인체보다 척추뼈가 세 개 더 있어야 저 비율이 나온다.
앵그르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명확한 기록이 없다.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은 이것이다. 그는 아름다움을 위해 비례를 희생했다. 저 길게 뻗은 허리와 등의 곡선이 그림을 더 우아하고 감각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그는 해부학적 정확성을 포기했다.
미적 목적을 위한 의도적 왜곡이다. 이 발상이 19세기 후반 화가들에게 영향을 줬다. 몸을 꼭 사실대로 그릴 필요가 없다. 그림의 목적이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면.
앵그르의 완벽주의
앵그르는 드로잉의 대가였다. 그의 선은 거의 완벽하다. 특히 초상화 드로잉은 지금 봐도 경이롭다.
그런데 이 완벽한 드로잉 실력을 가진 사람이 척추를 세 개 더 그린 것이다. 실수가 아니다.
앵그르는 색채보다 선을 중요시했다. 색은 표면이지만 선은 형태의 본질이라는 생각이었다. 이 신념 때문에 동시대 낭만주의의 열렬한 색채주의자 들라크루아와 평생 충돌했다.
앵그르 대 들라크루아의 논쟁은 당시 파리 미술계를 양분했다. 지금도 흥미로운 대립이다. 선인가 색인가. 형태인가 느낌인가.
동방 취향, 오리엔탈리즘
이 그림에는 터키식 물담배, 공작새 깃털 부채, 이국적인 직물이 등장한다. 앵그르가 직접 조사하거나 경험한 것들이 아니었다. 당시 파리에 유통되던 동양 관련 자료들을 참고했다.
그 결과 여성은 유럽인의 이상화된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배경은 상상 속의 오리엔트다.
이것이 오리엔탈리즘의 구조다. 타자를 실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타자에 대한 욕망과 환상을 투사한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이 개념을 1978년 〈오리엔탈리즘〉에서 체계화했는데, 그 논의의 중심에 이런 그림들이 있다.
이 그림을 '아름답다'고 보는 시선과 '문제적이다'고 보는 시선이 동시에 존재한다. 둘 다 맞다.
루브르에서 이 그림이 속한 맥락
루브르 드농관에 있다. 다비드의 〈나폴레옹 대관식〉과 같은 계통의 전시실이다.
근처에는 다비드, 들라크루아의 대형 작품들이 있다. 그 사이에서 이 그림은 상대적으로 작다. 180cm × 91cm.
하지만 이 그림 앞에 서면 그 작은 크기가 오히려 친밀감을 만든다. 거대한 역사화들 사이에서 이 나체의 여성은 조용히 등을 돌리고 있다. 보는 사람 쪽을 향한 시선이 묘하게 냉정하다.
비율이 틀렸지만 이상하게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이 어디서 오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그게 앵그르가 의도한 것이었을 것이다.
※ 이미지 출처
- La Grande Odalisque, Jean-Auguste-Dominique Ingres, 1814, Musée du Louvre, Paris.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관련 글: [들라크루아의 자유의 여신](링크) |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링크)
6. 척추가 세 개 더 많은 이유
〈그랑드 오달리스크〉를 처음 본 의학자와 해부학자들의 반응은 당혹감이었다. 이 여성의 척추는 인체 해부학적으로 불가능하다. 뒤로 너무 길게 뻗어 있다. 분석에 따르면 척추가 정상보다 세 개에서 다섯 개 더 있는 셈이다.
앵그르는 실수를 한 것이 아니다. 그는 당시 가장 정교한 화가 중 하나였고, 인체 해부학을 모를 리가 없었다. 의도적으로 변형했다. 이 변형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가. 인물의 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뒤로 길게 뻗은 등 곡선이 S자를 이루며 관람자의 시선을 끈다.
앵그르는 이상적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실제 몸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이상을 그렸다. 그래서 척추를 늘렸다. 다리의 길이도 실제 비례가 아닐 수 있다. 전체적으로 인체를 아름다움의 방향으로 '조각'했다. 신고전주의는 이렇게 이상(理想)을 현실보다 앞에 뒀다.
7. 오달리스크. 하렘의 여인
오달리스크는 오스만 제국 술탄의 하렘에 있던 여성을 부르는 말이었다. 18~19세기 유럽에서 동방의 하렘은 서양 남성들의 상상 속 이국적 환상의 공간이었다. 직접 갈 수 없는, 볼 수 없는 금지된 공간. 그 공간의 여인들을 상상으로 그리는 것이 유행이었다.
앵그르는 터키를 직접 방문한 적이 없었다. 그가 그린 하렘은 실제 하렘이 아니라 상상의 하렘이다. 공작 깃털 부채, 동양풍 천, 아편 파이프. 이것들은 유럽 남성들이 동방에 대해 가진 이미지를 조합한 것이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지적한 그 서구의 동방 왜곡이 이 그림에도 있다.
하지만 이 비판이 그림의 미술사적 위치를 지우지는 않는다. 앵그르는 그 상상의 공간 안에서 최고 수준의 기법으로 최대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그림 안의 문제의식과 그림 자체의 예술적 성취는 별개로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두 평가를 동시에 가지고 이 그림을 보는 것이 나는 더 풍부한 감상이라고 생각한다.
8. 앵그르와 들라크루아의 대립
앵그르와 들라크루아는 19세기 프랑스 미술을 대표하는 두 화가였고, 동시에 서로 완전히 반대되는 방향의 화가들이었다. 앵그르는 선(線)을 중시했다. 윤곽선, 형태의 정확성, 고전적 아름다움. 들라크루아는 색채(色彩)를 중시했다. 감정, 에너지, 운동감.
이 대립은 당시 파리 화단을 두 진영으로 갈랐다. 앵그리스트와 들라크루아주의자. 두 화가는 서로를 비판했다. 앵그르는 들라크루아의 그림이 조잡하다고 했다. 들라크루아는 앵그르가 너무 차갑고 박물관 같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보면 두 사람 모두 프랑스 미술의 두 위대한 방향을 개척했다. 앵그르의 선은 상징주의와 아르누보로, 들라크루아의 색채는 인상주의와 모더니즘으로 이어졌다. 대립이었지만 함께 미술의 가능성을 넓힌 대립이었다.
9. 신고전주의의 역설
신고전주의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이상을 부활시키려 했다. 그런데 앵그르의 〈그랑드 오달리스크〉는 그리스 신화의 비너스가 아니라 오스만 하렘의 여성이다. 고전적인 것이 아니라 이국적인 것이다. 형식은 신고전주의지만 주제는 오리엔탈리즘이다.
이 역설이 흥미롭다. 앵그르는 새로운 주제를 고전적 형식으로 담으려 했다. 완벽한 형태, 부드러운 표면, 이상적 비례. 이것들은 그리스 조각에서 배운 것이다. 하지만 그 형식 안에 담긴 것은 당시 유럽 남성들의 동방 욕망이었다.
이 그림이 1814년 살롱에 처음 출품됐을 때 비평가들의 반응은 "척추가 틀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200년 동안 이 그림은 계속 관람객을 끌어들였다. 척추 논쟁보다 더 깊은 무언가가 이 그림 안에 있기 때문이다. 완벽한 형태와 불편한 상상이 공존하는 그림. 그것이 앵그르의 〈그랑드 오달리스크〉다.
8. 해부학적 오류인가, 의도적 선택인가
〈그랑드 오달리스크〉를 처음 본 당시 평론가들은 즉각 문제를 지적했다. 척추뼈가 두세 개 더 있다. 오른팔이 비정상적으로 길다. 왼발이 오른발보다 큰 것처럼 보인다. 해부학적으로 불가능한 자세다. 살롱에서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앵그르는 이것을 실수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위해 해부학을 의도적으로 변형했다는 것이다. 매너리즘 화가들의 방식이었다. 파르미자니노의 긴 목 마돈나처럼.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재창조.
하지만 비판은 계속됐다. 19세기 신고전주의는 정확성을 중요시했다. 다비드의 제자인 앵그르가 해부학을 무시했다는 것은 아이러니였다. 결국 이 논쟁은 그림을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랑드 오달리스크〉는 비판 속에서 19세기 가장 많이 논의된 그림 중 하나가 됐다.
9. 오리엔탈리즘의 문제
앵그르는 오달리스크를 그리면서 중동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가 참고한 것은 여행기, 삽화, 그리고 상상이었다. 터키의 하렘은 서유럽 남성들에게 일종의 판타지였다. 이국적이고 이해할 수 없고 관능적인 공간.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런 방식의 재현을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불렀다. 서양이 동양을 일방적으로 정의하고 타자화하는 것. 앵그르의 오달리스크는 실제 중동 여성이 아니라 서유럽의 욕망이 만들어낸 이미지였다.
이 비판은 유효하다. 동시에 그림 자체가 뛰어나다는 것도 사실이다. 피부의 질감, 파란 천의 주름, 부채와 향로의 배치. 앵그르의 기술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오늘날 이 그림 앞에 서는 것은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경험이다. 아름다움을 인정하는 것과, 그 아름다움이 담고 있는 문제를 함께 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