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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ㅣ예술인문

엘 그레코 — 길쭉한 얼굴의 이유

by 미술에 취하다 2026. 5. 8.

엘 그레코의 그림을 보면 인물들이 이상하게 길쭉하다. 보통 인물의 두 배는 길어 보인다. 그래서 오랫동안 그가 눈이 나빠서 그렇게 그렸다는 설이 있었다. 난시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20세기에 연구자들이 실험해본 결과, 눈이 나쁜 사람은 실제로 길쭉하게 보이는 게 아니라 흐릿하게 보인다고 한다. 길쭉하게 그린 건 눈 때문이 아니라 선택이었다.

▲ The Adoration of the Shepherds (ca. 1605–10) — El Greco (Domenikos Theotokopoulos)

▲ Christ Healing the Blind (ca. 1570) — El Greco (Domenikos Theotokopoulos)

▲ The Vision of Saint John (ca. 1608–14) — El Greco (Domenikos Theotokopoulos)

▲ Cardinal Fernando Niño de Guevara (1541–1609) (ca. 1600) — El Greco (Domenikos Theotokopoulos)

 


 

목차

Cardinal Fernando Niño de Guevara (1541–1609)

1. 크레타에서 스페인까지

2. 인물이 길어지는 이유

3.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두 개의 세계

4. 그가 마드리드에 가지 못한 이유

5. 엘 그레코가 다시 발견된 것

 


 

▲ 엘 그레코,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1586~1588년, 톨레도 산토 토메 성당 소장.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엘 그레코(1541~1614)의 본명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다.

 

크레타에서 태어났다. 비잔틴 성화 화가로 훈련받았다. 이탈리아로 가서 티치아노 문하에서 공부했다. 그리고 스페인 톨레도에 정착해서 죽을 때까지 거기 살았다.

 

세 개의 문화권. 비잔틴, 베네치아 르네상스, 스페인. 이 그의 몸에서 합쳐졌다. 그 결과가 저 길쭉한 인물들이다.

 


 

크레타에서 스페인까지

 

1567년 티치아노를 만나러 베네치아로 갔다. 티치아노의 방식을 배웠다. 빛과 색채의 처리 방식, 캔버스를 다루는 기술.

 

그다음 로마로 갔다. 거기서 미켈란젤로를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 시스티나 성당의 〈최후의 심판〉을 보고 "만약 저 벽화를 지운다면 내가 더 잘 그려주겠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당연히 로마 화가 집단에서 배척당했다.

 

1577년 스페인 톨레도로 왔다. 당시 스페인 왕 펠리페 2세의 에스코리알 궁을 위한 그림을 주문받았다. 그런데 왕이 그림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엘 그레코는 왕실 화가가 되는 기회를 잃었다.

 

그래서 그는 마드리드가 아닌 톨레도에 계속 남았다. 계획대로 됐다면 그는 완전히 다른 화가가 됐을 것이다.

 


 

인물이 길어지는 이유

 

엘 그레코가 길쭉하게 그린 것은 기술적 이유가 아니라 신학적, 미학적 이유였다고 연구자들은 설명한다.

 

비잔틴 성화에서 인물은 현실적 비례를 따르지 않는다. 영적 세계의 존재는 물질적 법칙을 초월해 있다. 길어지는 인체는 하늘을 향해 뻗어가는 영혼을 상징한다.

 

엘 그레코는 그 비잔틴 전통을 가지고 왔다. 거기에 이탈리아에서 배운 색채와 빛을 더했다. 그 결과가 저 길쭉하고 빛나는 인물들이다.

 

이것이 왜 스페인에서 통했을까. 16세기 후반 스페인은 가톨릭 반종교개혁의 중심이었다. 신앙의 깊이를 강조하는 종교적 분위기에서, 엘 그레코의 영적인 느낌의 인물들은 오히려 맞았다.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두 개의 세계

The Vision of Saint John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은 톨레도 산토 토메 성당에 있다. 지금도 원래 자리에 있다. 이 그림을 보러 그 성당으로 사람들이 간다.

 

그림은 수직으로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아래에는 백작의 시신을 성인들이 운반하는 장면. 위에는 그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

 

아래 세계는 현실적이다. 실제 인물들의 초상이다. 당시 톨레도 귀족들의 얼굴이 그림 속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

 

위 세계는 비현실적이다. 인물들이 더 길어지고, 빛이 다르고, 공간이 다르다.

 

한 화면 안에 두 개의 물리 법칙이 공존한다. 아래는 인간의 법칙, 위는 신의 법칙. 이 경계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

 


 

그가 마드리드에 가지 못한 이유

 

펠리페 2세가 에스코리알 성당을 위해 주문한 그림은 〈성 마우리치오의 순교〉였다. 엘 그레코는 그렸다. 왕은 거절했다. "종교적 감동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왕이 원한 건 질서 있고, 명확하고, 신앙심을 고취시키는 그림이었다. 엘 그레코의 그림은 너무 복잡하고, 너무 감각적이고, 너무 낯설었다.

 

그 거절로 엘 그레코는 왕실의 화가가 되는 길을 잃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톨레도라는 작은 도시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계속 그릴 수 있었다. 왕의 취향에 맞출 필요가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 실패가 그를 더 순수하게 만들었다.

 


 

엘 그레코가 다시 발견된 것

 

엘 그레코는 사후 수백 년간 거의 잊혀졌다.

 

19세기 후반에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마네, 세잔, 피카소 같은 화가들이 그를 발견했다.

 

특히 피카소는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의 하단에 줄지어 선 인물 구성이 〈아비뇽의 처녀들〉에 영향을 줬다고 했다. 입체주의 직전에 피카소가 보고 있던 것 중 하나가 엘 그레코였다.

 

수백 년을 잠들어 있다가 현대미술의 선구자로 재발견된 화가.

 


 

※ 이미지 출처

- The Burial of the Count of Orgaz, El Greco, 1586-1588, Iglesia de Santo Tomé, Toledo.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관련 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링크) | [카라바조. 살인자가 그린 명작들](링크)

 

6. 길쭉한 인물의 진짜 이유

Christ Healing the Blind

엘 그레코의 인물이 길쭉한 이유로 가장 많이 퍼진 설은 난시설이다. 그가 눈이 나빠서 사물이 실제보다 길게 보였다는 것. 하지만 이 설은 19세기에 만들어진 것이고, 의학적으로도 난시가 이런 왜곡을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난시가 있으면 그림도 왜곡되게 보일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정상적인 그림을 그리게 될 것이다.

실제 이유는 미학적 의도다. 엘 그레코는 그리스 출신이었다. 본명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 '엘 그레코'는 '그 그리스인'이라는 스페인어 별칭이다. 크레타에서 이콘화(성화)를 배웠고, 베네치아에서 티치아노와 틴토레토를 연구했다. 이 두 전통이 그의 양식에 영향을 미쳤다.

이콘화에서 인물은 실제 비례를 따르지 않는다. 영적 존재를 표현할 때 길고 야위게 그리는 것은 세속적 육체성을 초월했다는 표시다. 엘 그레코는 이 전통을 의식적으로 계승했다. 종교적 주제를 그릴 때 인물이 길어지는 것은 의도였다.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가는 형태는 영적 열망의 시각적 표현이었다.

7. 마니에리스모와 엘 그레코

엘 그레코는 마니에리스모(Mannerism) 화가로 분류된다. 마니에리스모는 16세기 중반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양식으로, 르네상스의 이상적 균형에서 벗어나 의도적으로 왜곡되고 복잡한 표현을 추구했다. 미켈란젤로의 후기 작품, 폰토르모, 파르미자니노가 그 대표 화가들이다.

파르미자니노의 〈목이 긴 성모〉를 보면 엘 그레코와의 연결이 보인다. 긴 목, 과장된 비례, 인위적인 포즈. 마니에리스모는 아름다움의 기준을 자연에서 찾지 않고 예술가의 독창적 해석에서 찾았다. 수련된 기교(maniera)로 자연을 넘어서는 것이 목표였다.

엘 그레코는 마니에리스모를 배웠지만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의 색채는 베네치아에서 배운 것이고, 영적 긴장감은 스페인 가톨릭의 영향이다. 여러 전통이 충돌하고 합쳐진 독자적 양식이 나왔다. 그것이 엘 그레코다.

8.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톨레도의 기적

엘 그레코의 최대 걸작은 톨레도 성 토메 성당에 있는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1586~1588)이다. 가로 3.6미터, 세로 4.8미터의 대형 작품으로, 아래쪽에는 성인들이 백작의 시신을 매장하는 현세의 장면이, 위쪽에는 백작의 영혼이 천국으로 인도받는 장면이 있다.

두 세계가 한 그림 안에 있다. 아래쪽은 사실적이고 차분하다. 스페인 귀족들의 초상화적 표현. 위쪽은 다르다. 그 유명한 길쭉한 형체들이 소용돌이처럼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두 양식이 같은 캔버스 안에서 만나는 것이 의도적이다. 현세와 천상이 다른 법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이 그림은 오르가스 백작이 선행을 베풀어 성인들이 직접 나타나 그의 장례를 치렀다는 전설을 담고 있다.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라 14세기의 기적 이야기다. 엘 그레코는 이것을 1586년 당시 톨레도 사람들의 초상화와 함께 그려서, 과거의 기적과 현재의 인물이 같은 공간에 있게 만들었다.

9. 스페인에서의 삶

The Adoration of the Shepherds

엘 그레코는 1577년 톨레도에 정착했다. 처음에는 왕실 화가를 목표로 했다. 하지만 필립 2세가 그의 그림을 보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왕실 주문은 없었다. 하지만 톨레도에서 교회 의뢰가 들어왔고, 그는 그곳에 머물며 평생을 보냈다.

엘 그레코는 스페인 사람이 됐지만 스페인 화가가 되지는 않았다. 그의 양식은 끝까지 독자적이었다. 그를 이해한 것은 왕이 아니라 톨레도의 지식인들과 성직자들이었다. 그들이 의뢰한 작품들이 지금도 톨레도 성당들을 채우고 있다.

엘 그레코는 죽은 후 한동안 잊혔다. 그의 양식은 너무 독특해서 따르는 사람이 없었다. 19세기 말 재발견되면서 표현주의의 선구자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뭉크, 코코슈카, 오스카 코코슈카가 그의 왜곡된 형태에서 영감을 받았다. 엘 그레코는 시대를 400년 앞서간 화가였다.

8. 그레코가 스페인에서 찾은 것

엘 그레코는 크레타 섬 출신이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티치아노의 밑에서 배웠고, 로마를 거쳐 스페인으로 갔다. 스페인 왕 펠리페 2세의 후원을 기대했지만 왕은 그의 그림을 거부했다. 너무 기이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톨레도에서 그는 다른 후원자들을 만났다. 스페인 반종교개혁 시기의 귀족과 성직자들은 그레코의 신비적이고 영적인 그림에서 자신들의 신앙을 봤다.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은 그 결과였다. 이 그림은 지금도 톨레도의 산토 토메 교회에 있다. 원래 자리에서 400년 이상 그대로다.

그레코는 톨레도에서 죽었다. 그의 양식은 후계자를 남기지 못했다. 너무 독특해서 계승하기가 어려웠다. 재발견된 것은 19세기 말, 세잔과 고흐가 그에게 주목하면서였다. 20세기 표현주의 화가들은 그레코를 자신들의 선조로 불렀다.

9. 길고 가느다란 인물들의 이유

엘 그레코의 인물들은 비현실적으로 길고 가느다랗다. 이것에 대한 설명이 여러 개 있다. 乱시 교정이 안 된 난시로 인해 사물이 늘어 보였다는 의학적 설명이 한때 유행했다. 하지만 이것은 현재 대부분 부정된다. 난시 환자는 그 왜곡을 보정해서 그린다.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은 비잔틴 이콘화의 전통이다. 크레타 섬에서 그레코는 이콘 화가로 출발했다. 비잔틴 전통에서 길고 가는 인물은 영적 초월성을 나타낸다. 물질적 육체를 벗어난 존재. 그레코는 이 전통을 서양 유화 기법과 결합했다.

그 결과 그레코의 인물들은 지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몸이 빛을 발하는 것 같다. 특히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위쪽 하늘 장면에서 이 효과가 극대화된다. 천사와 성인들이 구름 사이에서 흘러내리는 듯 빛난다. 이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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