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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ㅣ예술인문

브뤼헐의 바벨탑|탑이 무너진 건 신의 분노 때문이 아니다

by 미술에 취하다 2026. 5. 12.

바벨탑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어딘가 석연찮았다. 신이 인간의 언어를 흩어놓은 건 '오만함에 대한 벌'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게 전부일까? 브뤼헐의 그림을 보다가 그 의문이 다시 떠올랐다.

▲ The Crucifixion with Saints and a Donor (ca. 1520) — Joos van Cleve

▲ The Rest on the Flight into Egypt (ca. 1512–15) — Gerard David

▲ The Feast of Acheloüs (ca. 1615) — Peter Paul Rubens

▲ The Lamentation (ca. 1520–25) — Ambrosius Benson

 


 

목차

1. 탑의 구조가 이상하다

2. 브뤼헐이 본 바벨탑

3. 플랑드르의 앤트워프

4. 탑이 무너진 진짜 이유

5. 관련 글

 


 

1. 탑의 구조가 이상하다

 

피터르 브뤼헐(대), 〈바벨탑〉, 1563년, 유화, 114×155cm,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소장. (Public Domain)

 

브뤼헐의 〈바벨탑(The Tower of Babel)〉은 1563년 작품이다. 탑은 거대하고, 아직 건설 중이다. 구름을 뚫을 듯 솟아오른 나선형 구조물. 수천 명의 인부들이 개미처럼 붙어 작업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탑의 하단부. 바닷가 쪽. 이 이미 무너지고 있다. 완성되지도 않았는데 기초가 흔들린다. 이건 신의 개입 이전에 이미 내부 붕괴가 시작됐다는 암시다.

 

브뤼헐은 이 탑의 구조를 로마의 콜로세움을 모델로 삼았다고 알려져 있다. 고대 로마의 위대한 건축물이 결국 폐허가 됐다는 역사적 사실이 겹쳐 읽힌다. 번영과 몰락은 함께 온다.

 


 

2. 브뤼헐이 본 바벨탑

 

피터르 브뤼헐(1525~1569)은 플랑드르, 즉 지금의 벨기에 지역에서 활동했다. 그가 살던 앤트워프는 당시 유럽 최대의 무역 중심지였다. 수십 개 언어가 뒤섞이고, 각국 상인이 거래하고, 돈과 권력이 집중됐다.

 

바벨탑은 사실 앤트워프의 이야기였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거대한 무언가를 함께 짓는다. 그 안에는 필연적으로 오해와 갈등이 있다. 브뤼헐은 성경의 이야기를 빌려, 자신이 살던 도시의 모순을 그렸다. 인간의 야망이 집단의 분열을 낳는다는 것.

 


 

3. 플랑드르의 앤트워프

 

16세기 앤트워프는 지금으로 치면 뉴욕과 실리콘밸리를 합쳐놓은 것 같은 곳이었다. 다이아몬드, 향신료, 직물, 금융. 모든 것이 이 도시를 거쳤다.

 

그러나 번영 뒤에는 스페인의 정치적 억압과 종교적 갈등이 있었다. 1576년, 앤트워프는 스페인 군대에 의해 약탈당한다('스페인의 분노'). 브뤼헐은 그 사건을 보지 못하고 1569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그림은 마치 예언처럼 읽힌다.

 

탑은 무너지기 전부터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4. 탑이 무너진 진짜 이유

 

나는 브뤼헐의 바벨탑에서 '소통의 실패'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본다. 기초.

 

그림 속 탑의 하단부는 암반이 아닌 해변 모래 위에 지어지고 있다. 어떤 고층 건물도 기초 없이는 버티지 못한다. 언어가 달라서 무너진 게 아니라, 처음부터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로 지어졌던 것이다.

 

이게 더 무서운 메시지다. 의사소통이 문제가 아니라. 그 거대한 야망 자체가 애초에 지속 불가능한 형태였다는 것.

 

인간의 오만함은 때로 신의 개입 없이도 스스로 붕괴한다. 브뤼헐은 그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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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브뤼헐이 바벨탑을 두 번 그린 이유

브뤼헐은 바벨탑을 두 번 그렸다. 빈 미술사박물관에 있는 것이 대형 버전(1563년)이고, 로테르담 보이만스 반 뵈닝겐 미술관에 있는 것이 소형의 다른 버전이다. 두 그림은 비슷하지만 세부에서 다르다. 같은 주제를 반복해서 그렸다는 것은 브뤼헐에게 이 주제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말한다.

브뤼헐이 왜 바벨탑에 매료됐는지에 대한 해석이 있다. 16세기 플랑드르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고, 스페인의 통제가 강화되던 시기였다. 외국의 지배, 언어의 혼란, 종교 갈등. 바벨탑의 이야기가 그 시대에 매우 현재적인 이야기로 읽혔을 것이다.

탑 아래쪽 왼편에 왕이 있다. 무릎을 꿇은 석공들이 왕에게 보고하고 있다. 이것이 성경의 니므롯 왕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오만한 왕의 명령으로 하늘에 닿는 탑을 쌓는다. 하지만 그 탑은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7. 건축 세부에 담긴 것

브뤼헐의 바벨탑은 실제 건설 중인 것처럼 묘사됐다. 발판, 기중기, 석재 운반. 인부들이 일하고 있다. 건물의 여러 층이 동시에 공사 중이다. 이 세부 묘사가 그림의 현실감을 만든다. 신화적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건설 현장처럼 보인다.

탑의 구조가 로마의 콜로세움을 닮았다는 것이 주목된다. 브뤼헐은 1552~1553년 이탈리아를 여행했고, 로마를 방문했다. 콜로세움을 직접 봤을 것이다. 고대 로마의 건축물이 그에게 "사람이 이런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경이로움과 동시에 "그것도 결국 무너졌다"는 생각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탑 위쪽은 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아직 미완성이다. 하지만 이미 엄청난 규모다. 그럼에도 신은 언어를 혼란시켜 공사가 중단되게 할 것이다. 이 그림은 그 직전 순간을 포착한다. 절정에 달했을 때 몰락이 시작되는 그 순간.

8. 오만이 아니라 소통의 문제

성경의 바벨탑 이야기는 전통적으로 인간의 오만에 대한 신의 심판으로 해석됐다. 하늘에 닿으려 했던 오만.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소통에 관한 것이라는 해석이 더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신이 한 것은 언어를 흩어놓은 것이었다. 즉, 사람들이 서로 말이 통하지 않게 만들었다.

탑을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소통을 막은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협력할 수 없다. 협력이 없으면 아무리 야심찬 프로젝트도 진행되지 않는다. 이것이 바벨탑의 진정한 교훈이라면, 오만보다 더 근원적인 것을 건드리는 이야기다. 공동의 언어, 공동의 목표, 공동의 이해 없이는 어떤 것도 완성되지 않는다.

브뤼헐 시대의 플랑드르는 스페인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가 뒤섞인 공간이었다. 종교도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충돌하고 있었다. 바벨탑의 언어 혼란이 그들에게 추상적 신화가 아니라 눈앞의 현실이었을 것이다.

9. 브뤼헐의 세계관

피테르 브뤼헐(대)는 플랑드르의 농촌과 민중 생활을 주로 그린 화가로 알려져 있다. 〈농부들의 결혼식〉, 〈아이들의 놀이〉, 〈눈 속의 사냥꾼〉. 이 그림들에서 브뤼헐은 세상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그렸다. 개인이 아닌 군중, 영웅이 아닌 일상.

바벨탑도 같은 시점이다. 탑을 완성하려는 왕의 야망이 아니라 그 야망이 만들어낸 거대한 공사 현장이 보인다. 수천 명의 인부들이 각자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이 자신이 무엇을 짓고 있는지 알고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이 그 개미 같은 움직임을 보여준다.

브뤼헐의 그림들은 세상을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게 기록했다. 동시에 그 안에 철학적 질문을 숨겨놓았다. 농부들이 노는 장면에도, 탑을 쌓는 장면에도. 그의 그림을 보면 처음에는 세부의 흥미로운 장면들에 빠진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 전체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8. 바벨탑. 건축적 관점에서

브뤼헐의 〈바벨탑〉을 건축적으로 보면 흥미롭다.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구조, 아치 위에 아치가 겹치는 방식. 브뤼헐은 로마의 콜로세움을 직접 봤고, 그것을 참고해서 바벨탑을 그렸다. 고대 로마의 건축물이 가장 인상적인 인간의 건축 업적이었다.

하지만 탑의 구조는 의도적으로 불안정하게 그려져 있다. 아래쪽 부분은 여전히 공사 중이고, 위쪽은 이미 구름에 가려 있다. 탑 전체가 약간 기울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다. 그것이 이 그림의 비극이다.

탑 주변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브뤼헐의 특징적인 방식이다. 거대한 서사 옆에 구체적인 일상의 장면들이 있다. 돌을 나르는 사람, 설계도를 보는 사람, 쉬고 있는 인부. 인간의 오만한 프로젝트 안에서 이 사람들은 그냥 일을 하고 있다.

9. 브뤼헐의 풍속화가 담은 것

브뤼헐은 〈농부의 결혼〉, 〈아이들의 놀이〉 같은 풍속화로도 유명하다. 이 그림들은 16세기 플랑드르의 일상을 기록한다. 먹고 마시고 춤추는 사람들, 온갖 놀이를 하는 아이들. 그것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풍자가 있다.

농부들은 탐욕스럽게 먹고 있다. 아이들의 놀이 중에는 어리석은 행동들이 있다. 브뤼헐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유머러스하게 보았다. 비난하지 않고, 그냥 보여준다. 이것이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과 같은 정신이다. 바보들의 세계를 너그럽게 관찰하는 것.

브뤼헐 이후 플랑드르 풍속화 전통은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로 이어진다. 베르메르, 스텐, 할스. 일상을 예술의 주제로 삼는 것이 당연해졌다. 그 출발점에 브뤼헐이 있다. 성경의 장면과 농부의 결혼이 같은 수준의 주제가 될 수 있다고 처음 보여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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