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 앞에서 사람들이 보통 "아름답다"고 먼저 말하는데, 나는 그게 늘 좀 불편했다. 물에 잠겨 죽어가는 여성인데. 꽃이 예쁘고, 드레스가 예쁘고, 표정이 평온하다고 아름다운 죽음이 되는 건 아니잖나.
▲ Self-Portrait (ca. 1647) — Salvator Rosa
▲ Venice, from the Porch of Madonna della Salute (ca. 1835) —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 The Love Song (1868–77) — Sir Edward Burne-Jones
▲ Charity (ca. 1630) — Guido Reni
목차

1. 그림이 말하지 않는 것
2. 모델이 죽을 뻔했다
3. 라파엘전파의 집착
4. 오필리아라는 인물
5. 관련 글
1. 그림이 말하지 않는 것
존 에버렛 밀레이, 〈오필리아〉, 1851~1852년, 유화, 76.2×111.8cm, 런던 테이트 브리튼 소장. (Public Domain)
〈오필리아(Ophelia)〉는 1851~52년 완성됐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오필리아는 아버지를 잃고 실성한 뒤 개울에서 익사한다. 밀레이는 그 순간을 그렸다.
그림에는 50종 이상의 식물이 등장한다. 각각 상징을 가진다. 양귀비(죽음), 제비꽃(충실함), 데이지(순수함), 버드나무(버려진 사랑). 밀레이는 실제 식물도감을 참조해 식물학적으로 정확하게 그렸다.
그런데 이 정밀함이 오히려 그림을 더 섬뜩하게 만든다. 죽어가는 사람을 이렇게 꼼꼼히 관찰한다는 것 자체가.
2. 모델이 죽을 뻔했다
그림의 모델은 엘리자베스 시달(Elizabeth Siddal). 나중에 화가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와 결혼하는 인물이다.
밀레이는 그녀에게 실제로 욕조에 누운 채 포즈를 취하게 했다. 겨울 몇 달간. 욕조 아래에 등잔을 설치해 물 온도를 유지했지만 어느 날 등잔이 꺼졌고, 시달은 심각한 폐렴에 걸렸다. 아버지가 밀레이를 고소하겠다고 했고, 밀레이는 치료비를 부담했다.
그림을 감상하는 동안 이 사실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완벽한 아름다움을 위해 모델을 실제로 위험에 빠트린 화가. 그 헌신인지 집착인지 모를 것이 이 그림에 녹아 있다.
3. 라파엘전파의 집착

존 에버렛 밀레이(1829~1896)는 라파엘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의 창립 멤버였다. 이 그룹은 1848년 영국에서 결성됐다. 라파엘로 이전 중세 회화의 섬세함과 진지함으로 돌아가자는 취지였다.
이들은 자연을 야외에서 직접 관찰해 그렸다. 밀레이는 〈오필리아〉의 배경을 런던 근교 서리(Surrey)의 개울가에서 수개월간 직접 그렸다. 그런 다음 런던 스튜디오로 돌아와 시달을 욕조에 눕혀 인물을 완성했다.
라파엘전파의 작품들은 지금 보기엔 '예쁘다'는 반응이 먼저 나오지만, 사실 이들은 당시 기준으로 꽤 급진적이었다. 이상화를 거부하고 현실의 세부를 그대로 그렸다.
4. 오필리아라는 인물
셰익스피어의 오필리아는 왜 실성했나. 아버지 폴로니우스가 햄릿에게 살해됐기 때문이다. 오빠 레어티스는 복수를 위해 자리를 비웠고, 연인 햄릿은 그녀를 거부했다. 모든 남성이 그녀를 떠났거나 그녀를 이용했다.
오필리아는 능동적으로 죽음을 선택했는지, 아니면 단순히 물에 빠진 건지 텍스트는 모호하다. 밀레이의 그림은 그 모호함을 그대로 유지한다. 눈을 뜬 채로, 노래를 부르듯 입을 열고, 물 위에 떠 있다.
아름답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불편하다. 밀레이가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불편함이 이 그림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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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라파엘전파. 이 그림이 나온 운동

라파엘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는 1848년 영국에서 결성된 미술 운동이다. 밀레이,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윌리엄 홀먼 헌트가 핵심 멤버였다. 이름 그대로 라파엘로 이전의 이탈리아와 플랑드르 초기 르네상스 화가들을 이상으로 삼았다.
당시 영국 미술 아카데미가 라파엘로와 르네상스 이후의 전통을 표준으로 삼는 것에 반발했다. 그들이 보기에 아카데미의 규칙들이 미술을 경직시키고 있었다. 초기 르네상스의 세밀한 묘사, 강렬한 색채, 직접적인 자연 관찰로 돌아가자는 것이 주장이었다.
라파엘전파의 그림들은 강렬한 색채와 정교한 세부 묘사가 특징이다. 그 배경에는 종종 식물이나 자연 풍경이 매우 세밀하게 그려진다. 〈오필리아〉도 그렇다. 물 위에 떠 있는 풀과 꽃들 각각이 식물학적으로 정확하게 그려졌다. 그 정확함이 이 그림의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7. 실제 모델의 이야기
오필리아 역할을 맡은 모델은 엘리자베스 시달이었다. 밀레이는 그녀에게 물이 가득 찬 욕조 안에 누워 있도록 요청했다. 겨울이었다. 욕조 아래에 램프를 켜서 물을 따뜻하게 유지하려 했지만, 작업이 길어지면서 물이 식었다. 엘리자베스 시달은 말하지 않고 계속 자세를 유지했고, 결국 심한 감기에 걸렸다.
시달의 아버지가 밀레이에게 치료비를 청구했고, 밀레이는 지불했다. 이 일화가 전해지는 이유는 이후 엘리자베스 시달의 삶이 오필리아와 비슷하게 전개됐기 때문이다. 그녀는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와 오랜 연애 끝에 결혼했고, 사산을 경험하고 아편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비극적인 죽음. 그 삶이 오필리아의 이미지와 겹친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오필리아를 연기하기 위해 물속에 누웠던 여성이 결국 오필리아 같은 삶을 살았다. 밀레이의 그림이 예언이었을 리는 없다. 하지만 그 우연의 일치가 이 그림을 볼 때마다 다른 무게로 다가오게 한다.
8. 아름다운 죽음이란 없다
이 그림 앞에서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먼저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꽃이 있고, 드레스가 있고, 고요한 물이 있다.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그림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죽음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 불편하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오필리아는 익사한다. 자살인지 사고인지 명확하지 않다. 헤르트루드 왕비의 묘사에 따르면 그녀는 버드나무에 기어올랐다가 가지가 부러지며 물에 빠졌고, 한참을 노래를 부르며 떠 있다가 가라앉았다. 그 장면을 밀레이는 가라앉기 직전으로 포착했다.
손바닥이 하늘을 향해 열려 있다. 입이 살짝 열려 있다. 아직 의식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미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이 경계선의 순간. 죽음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에 대한 불편함과, 그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 사이의 갈등. 그것이 이 그림 앞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9. 오필리아 이미지의 영향
밀레이의 〈오필리아〉는 이후 오필리아를 표현하는 방식의 원형이 됐다. 물, 꽃, 드레스, 반쯤 잠긴 여성. 이 이미지가 수없이 반복됐다. 사진, 영화, 다른 그림들에서. 오필리아라는 캐릭터를 생각할 때 자동으로 이 이미지가 떠오를 정도다.
이 이미지에 대한 비판도 있다. 여성의 죽음을 아름답게 표현함으로써 비극을 미화한다는 것. 오필리아는 사랑, 배신, 상실로 인해 정신을 잃고 죽었다. 그것이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는 것이 문제적이라는 시각이다. 미술사에서 비극적으로 죽은 여성이 아름다운 이미지가 되는 패턴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밀레이의 이 그림이 그 패턴의 가장 유명한 예 중 하나다.
비판을 알고 이 그림을 다시 보면 다르게 보인다.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이 무엇을 덮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것도 이 그림을 보는 방식 중 하나다. 밀레이가 그것까지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좋은 그림은 보는 사람이 가져오는 맥락에 따라 계속 다르게 읽힌다.
8. 라파엘전파의 방법론
밀레이가 속했던 라파엘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는 1848년 세 젊은 화가가 결성했다. 밀레이,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윌리엄 홀먼 헌트. 그들이 거부한 것은 라파엘로 이후 확립된 아카데믹 전통이었다. 인위적인 구성, 공식화된 표현, 표면적인 아름다움.
그들이 원한 것은 자연을 직접 관찰하는 것이었다.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고, 실물을 보고 그리고, 색채를 원색에 가깝게 쓰는 것. 밀레이가 오필리아의 강 배경을 그리기 위해 서리 지방의 실제 강가에서 수개월을 보낸 것이 그 예다. 영국의 차가운 날씨에 야외 작업은 고생스러웠다.
리지 시달이 오필리아 역할을 위해 물이 든 욕조에 몇 시간씩 누워 있었다. 난방 램프가 꺼지는 것을 모른 채 차가운 물 속에 오래 있다가 심각하게 아팠다고 한다. 이 헌신이 그림의 사실성을 만들었다. 라파엘전파의 방법론은 이렇게 극단적이었다.
9. 오필리아가 19세기에 의미한 것
오필리아는 빅토리아 시대에 특별한 상징이었다. 남성의 광기와 배신으로 죽은 여성. 아름답고 무고하고 비극적인 죽음. 당시 많은 화가들이 오필리아를 그렸다. 수동적 피해자로서의 여성성이 그 시대의 미적 취향과 맞았다.
하지만 밀레이의 오필리아는 단순히 아름다운 죽음이 아니다. 리지 시달의 얼굴은 평온하지만 동시에 공허하다. 꽃들과 물은 자연스럽지만 그 자연스러움이 오히려 소름끼친다. 아름다움과 죽음이 이렇게 가까이 있다. 그것이 불편하다.
현재 이 그림은 런던 테이트 브리튼에 있다. 영국 미술관에서 가장 많이 재현된 그림 중 하나다. 나는 이 그림 앞에서 오필리아가 아니라 리지 시달을 생각한다. 차가운 욕조 안에서 화가가 지시하는 대로 몸을 유지하던 그 여성. 그림 속 오필리아는 그 희생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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