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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ㅣ예술인문

렘브란트는 왜 40년 동안 자신을 그렸을까 — 시간과 노화를 기록한 화가의 거울

by 미술에 취하다 2026. 3. 17.

렘브란트가 자화상을 80점 넘게 남겼다는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냥 연습용이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그림들을 시간 순서대로 놓고 보면, 20대의 자신감 넘치는 얼굴부터 파산 이후 뭔가를 알아버린 것 같은 눈빛까지. 그게 연습 이상의 무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는데, 그게 궁금해서 정리해봤다.

 


 

렘브란트 판 레인(1606~1669)은 생애 동안 자화상을 가장 많이 남긴 화가 중 하나다.

 

유화 약 40점, 에칭 31점, 드로잉 수 점. 총 80점 안팎의 자화상이 그의 이름으로 남아 있다. 20대부터 사망하던 해인 63세까지. 미술사학자들이 그의 자화상을 두고 "시각적 자서전"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다.

 


 

처음에는 연습이었다

 

1620년대 중반, 렘브란트가 레이던에서 화가 수업을 받던 시절 이야기다.

 

그는 당시 유럽을 휩쓸던 카라바조식 명암법, 이른바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에 빠져 있었다. 강한 광원 하나로 대상의 절반을 어둠 속에 묻어버리는 방식. 이 기법을 제대로 쓰려면 얼굴에 빛이 떨어지는 방식을 정확히 이해해야 했다. 가장 저렴하고 불평 없는 모델은 자기 자신이었다.

 

1628~29년경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자화상을 보면, 얼굴의 절반 이상이 그림자 속에 있다. 눈은 겨우 빛을 받아 반짝인다. 스물두 살짜리 청년이 거울을 보며 자기 얼굴에 빛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관찰하고 있는 그림이다.

 

이 시기 자화상에서 흥미로운 점은 표정이다. 입을 살짝 벌리거나, 눈썹을 올리거나, 놀란 것처럼 보이는 표정들이 많다. 연구자들은 이것을 당시 유행하던 "트로니(tronie)". 과장된 표정이나 특이한 인물 유형을 연구하는 그림. 과 연결시킨다. 렘브란트는 자기 얼굴로 감정 표현 실험을 했다.

 

연습은 성과로 이어졌다. 1630년대 초, 렘브란트는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초상화 화가가 되었다. 주문이 밀려들었고, 귀족과 상인들이 그의 스튜디오 앞에 줄을 섰다.

솔직히 이 성공 시기 작품들은 좀 심심하다. 의뢰인이 원하는 대로 맞춰 그린 티가 난다. 렘브란트 특유의 날 것 같은 감각이 덜하다.

 


 

성공기의 자화상: 무대 위 자기 연출

 

1630년대 자화상들을 보면, 렘브란트가 자신을 상당히 의식적으로 연출하고 있다는 게 보인다.

 

화려한 의상, 귀족풍의 모자, 금속 갑옷. 실제 그가 입었을 리 없는 옷들이다. 당시 암스테르담의 부유한 상인 계층이나 귀족들이 의뢰하는 초상화를 보면, 렘브란트가 그 방식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한 것처럼 보인다.

 

1640년 자화상이 그 절정이다. 지금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있다. 르네상스 풍의 귀족 의상, 팔꿈치를 돌에 걸친 여유로운 자세. 미술사가들은 이 자화상이 라파엘로나 티치아노의 초상화 구도를 의식적으로 따랐다고 본다. 34세의 렘브란트가 자신을 거장의 계보 위에 올려놓으려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자신감이, 6년 후에 산산조각난다.

 


 

1656년, 파산

 

성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렘브란트는 돈을 쓰는 것도 좋아했다. 희귀한 미술품과 골동품을 사들이고, 1639년에는 암스테르담 중심부에 큰 집을 사며 대출을 받았다. 아내 사스키아 판 에일렌뷔르흐(Saskia van Uylenburgh)는 1642년에 세상을 떠났다.

 

시장의 취향도 바뀌었다. 그가 추구하는 방향과 의뢰인들이 원하는 방향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주문이 줄었다. 빚이 쌓였다.

 

1656년, 법원은 파산을 선고했다. 집과 그림 컬렉션이 경매에 부쳐졌다.

 

▲ 렘브란트, 〈자화상〉, 1659년, 워싱턴 국립미술관 소장.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파산 3년 후인 1659년의 자화상이다. 화려한 의상은 없다. 작업복 비슷한 옷을 걸쳤고, 화면은 좁다. 그런데 그 눈이 이상하다. 무너진 사람의 눈이 아니다. 뭔가를 알아버린 사람의 눈처럼 보인다.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읽는 것 같다.

 


 

파산 이후의 작업 방식

 

흥미롭게도, 렘브란트의 기법 자체는 파산 이후에 더 자유로워졌다는 평가가 많다.

 

1640년대 이전 그림들과 후기 작품들을 비교해 보면, 붓 터치가 달라진다. 초기에는 매끄럽고 정교하다. 표면을 사포로 간 것처럼 매끈하게 마무리한 흔적이 있다. 그런데 후기로 갈수록 임파스토(impasto) 기법이 두드러진다. 물감을 두껍게 쌓고, 붓 자국을 숨기지 않는다. 심지어 팔레트 나이프나 손가락으로 물감을 긁거나 누른 흔적도 보인다.

 

그 시대 비평가들은 이 방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마무리가 덜 됐다"는 평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 보면, 그 투박함이 오히려 그림에 무게를 준다. 완성된 표면 뒤에 있는 무언가. 나이나 경험 같은 것. 가 물감 층 사이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마지막 자화상, 1669년

 

렘브란트는 1669년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63세.

 

그해 그린 자화상이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있다. 눈가 주름이 깊고, 피부는 처졌다. 일부 미술사가들은 이 그림에서 노화와 죽음을 앞둔 사람의 체념이나 평온을 읽는다. 다른 이들은 여전히 화가로서의 시선, 관찰자의 냉정함을 본다.

 

어떻게 읽든, 이 그림을 완성하고 두 달 남짓 뒤 그는 사망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이 마지막 자화상에서도 렘브란트는 붓과 팔레트를 들고 있다는 점이다. 60대 중반까지 여전히 자신을 화가로 정의하고 있는 그림이다. 성공했을 때도, 파산했을 때도, 늙었을 때도. 거울 앞에 서서 자기 자신을 보는 사람.

 


 

렘브란트의 자화상들을 시간 순서대로 늘어놓으면, 한 인간이 어떻게 늙어가는지가 그대로 보인다. 성공한 청년, 중년의 위기, 파산, 그리고 노년. 그런데 어느 시기 것을 봐도 그림에서 자기 자신을 숨기려는 흔적이 없다. 그게 지금도 그의 자화상 앞에서 발이 잘 안 떨어지는 이유인 것 같다. 뭔가 불편한 느낌인데, 외면하기가 어렵다.

 


 

※ 이미지 출처

- Self-portrait (1628-1629), by Rembrandt.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암스테르담 라익스박물관 소장

- Rembrandt van Rijn - Self-Portrait (1659).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워싱턴 국립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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