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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ㅣ예술인문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반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by 미술에 취하다 2026. 4. 6.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말이 처음엔 그냥 말장난처럼 들렸다. 그런데 이 그림의 사진을 찍어서 폰에 저장하면, 나는 지금 파이프 그림의 사진을 갖고 있는 건지, 파이프를 갖고 있는 건지, 그 파이프의 표상을 갖고 있는 건지.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해진다. 마그리트는 그 이상함을 80년 전에 이미 그렸다.

 

 


 

목차

1. 파이프 그림 아래 쓰인 문장

2. 이 그림이 말하는 것

3. 마그리트가 살았던 방식. 평범함 속의 비범함

4. 초현실주의와 마그리트의 차이

5. 이 그림을 보고 나면 달라지는 것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La Trahison des images)〉, 1929년,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소장.

▲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La Trahison des images)〉, 1929년,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소장. "Ceci n'est pas une pipe"

 

르네 마그리트(1898~1967)가 그린 파이프 그림.

 

그림 아래에 프랑스어로 이렇게 적혀 있다. "Ceci n'est pas une pipe." 번역하면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파이프 그림이 맞는데, 파이프가 아니라고 한다. 무슨 뜻인가.

 


 

파이프 그림 아래 쓰인 문장

 

1929년에 그렸다. 제목은 〈이미지의 배반(La Trahison des images)〉.

 

정답은 간단하다. 그림은 파이프가 아니다. 그림은 파이프의 이미지다. 실제 파이프를 담배에 채우려면 그림이 아닌 실물이 필요하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틀린 말이 아니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그림을 보고 "파이프다"라고 말하는 데 익숙하다. 그게 당연하게 느껴진다. 마그리트는 그 당연함에 브레이크를 건다.

 


 

이 그림이 말하는 것

 

이미지와 실재는 다르다.

 

단어와 실재도 다르다. '파이프'라는 글자는 파이프가 아니다. 파이프의 이름이다.

 

철학에서는 이것을 '기호와 지시 대상의 분리'라고 한다. 소쉬르 언어학의 핵심 개념이다. 기호(이미지, 단어)는 실제 사물이 아니라 사물을 가리키는 것이다.

 

마그리트는 이 철학적 개념을 그림 한 장으로 만들었다. 논문이나 설명 없이.

 

그림을 이해하는 데 철학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그림 앞에서 잠깐 멈추게 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마그리트가 살았던 방식. 평범함 속의 비범함

 

마그리트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평생 살았다. 달리처럼 괴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중산층 정장을 입고, 아내와 함께 조용한 집에서 살았다.

 

이웃들에게는 평범한 남자였다. 매일 아침 작업실에 가서 그림을 그리고 저녁에 집에 돌아왔다.

 

작업실도 특별하지 않았다. 자신의 집 거실에서 그림을 그렸다. 물감이 튀지 않도록 정장을 입고 그렸다고 전해진다.

 

외모가 극적이지 않고, 사생활이 스캔들이 없고, 발언이 도발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림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초현실주의와 마그리트의 차이

 

초현실주의는 무의식과 꿈의 이미지를 표현한다. 달리의 녹는 시계, 에른스트의 이상한 짐승들.

 

마그리트도 초현실주의로 분류되지만 방식이 다르다.

 

달리는 몽환적 분위기로 그린다. 마그리트는 사실적으로 그린다. 파이프 그림은 사진처럼 정확하다. 그 정확한 그림 아래에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쓴다.

 

달리의 그림은 꿈처럼 느껴진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현실처럼 느껴지는데 뭔가 이상하다. 어디가 이상한지 찾다 보면 생각이 시작된다.

 

마그리트 자신은 자신의 작업을 "철학적 회화"라고 불렀다.

 


 

이 그림을 보고 나면 달라지는 것

 

이 그림을 한 번 보고 나면, 다음번에 "이것은 사과다"라는 말을 들을 때 잠깐 멈추게 된다.

 

사과 그림을 보고 "이것은 사과다"라고 말하는 건 엄밀히 맞지 않는다. 사과의 이미지다. 그것을 우리는 사과라고 부르기로 약속했다.

 

언어와 이미지는 실재를 가리키는 도구다. 도구와 실재를 혼동하지 말라는 것.

 

한 장의 그림이 그 생각을 심어준다.

 

지금 LA 카운티 미술관에 있다. 마그리트가 LA에 있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 그가 살던 벨기에에 있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뭐, 그게 이 그림이 말하는 것과 연결되는 것 같기도 하고.

 


 

※ 이미지 참고

- The Treachery of Images, René Magritte, 1929, LACMA, Los Angeles. 저작권 관계로 이미지 미게재

 

관련 글: [달리의 기억의 지속](https://arteduguide.tistory.com) | [에드워드 호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https://arteduguide.tistory.com/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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