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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ㅣ예술인문

잭슨 폴록 — 바닥에 캔버스를 깔고 쏟아부은 그림

by 미술에 취하다 2026. 4. 7.

폴록의 그림을 처음 보면 '나도 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든다. 그 생각은 아마 반쯤만 틀렸을 것이다. 바닥에 캔버스를 놓고 물감을 뿌리는 것 자체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근데 그 결과가 저렇게 되려면 뭔가가 다를 것이다. 그게 뭔지 생각하면서 이 글을 썼다.

 

 


 

목차

1. 붓을 캔버스에 대지 않았다

2. 드리핑은 기술이다

3. 폴록이 살았던 삶

4. 그림이 팔린 이유. 냉전과 추상표현주의

5. 지금 이 그림을 어떻게 봐야 하나

 


 

바실리 칸딘스키, 〈구성 7〉, 1913년. 유럽 추상 회화의 선구자. 폴록의 드리핑 기법은 이 추상화 전통을 미국식으로 혁명한 것이다.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 바실리 칸딘스키, 〈구성 7〉, 1913년. 유럽 추상 회화의 선구자. 폴록의 드리핑 기법은 이 추상화 전통을 미국식으로 혁명한 것이다.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잭슨 폴록(1912~1956)의 작업 방식은 이랬다.

 

대형 캔버스를 바닥에 펼친다. 그 주위를 걸으면서 위에서 물감을 떨어뜨리거나 뿌린다. 때로는 막대기로 흘려보내고, 때로는 페인트 통에 구멍을 뚫어 흘린다.

 

붓이 캔버스에 닿지 않는다. 작가의 몸도 캔버스에 닿지 않는다.

 

"이게 그림이냐"는 질문을 당시 많이 받았다. 지금도 받는다.

 


 

붓을 캔버스에 대지 않았다

 

1947년경부터 이 방식을 본격적으로 사용했다. '드리핑(dripping)' 또는 '액션 페인팅'이라고 부른다.

 

폴록은 이렇게 말했다: "캔버스 위에 서서 작업할 때, 나는 그림 속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젤 앞에서 그리는 것과는 다르다."

 

전통적 회화에서 화가는 캔버스 앞에 서서 대상을 보며 그린다. 폴록은 캔버스를 둘러싸고 그 안에서 움직인다. 그림이 2D가 아니라 공간이 된다.

 


 

드리핑은 기술이다

 

물감을 아무렇게나 뿌리면 폴록처럼 보일까. 그렇지 않다.

 

물리학자 리처드 테일러는 폴록의 그림을 분석해 프랙탈 패턴을 발견했다. 프랙탈은 자연에서 발견되는 자기 유사 구조다. 나뭇가지, 해안선, 눈송이.

 

폴록의 드리핑에는 무질서처럼 보이지만 일정한 밀도와 균형이 있다. 평범한 사람이 물감을 뿌리면 이런 패턴이 나오지 않는다.

 

폴록은 캔버스 주위를 어떻게 이동하고, 얼마나 높이에서 얼마나 빨리 물감을 흘리는지를 몸으로 계산했다. 의식적 계산이 아니라 수백 시간의 훈련으로 체득한 것이다.

 


 

폴록이 살았던 삶

 

와이오밍에서 태어났다. 뉴욕 아트스튜던츠리그에서 공부했다. 알코올 중독이 평생의 문제였다.

 

화가 리 크래스너와 1945년 결혼했다. 둘 다 미술가였다. 크래스너는 폴록의 작업을 지지하면서 자신의 작업도 했다. 폴록이 알코올로 힘든 시간을 보낼 때도 그의 곁에 있었다.

 

1956년 8월, 음주 운전 중 사고로 사망했다. 동승했던 두 여성 중 한 명도 사망했다. 44세였다.

 

크래스너는 폴록 사후 그의 유산을 정리하면서 자신의 작업도 계속했다. 크래스너는 폴록보다 더 오래 살았고, 더 오래 더 꾸준히 그렸다.

 


 

그림이 팔린 이유. 냉전과 추상표현주의

 

폴록이 유명해진 데는 냉전의 맥락이 있다.

 

미국 정부와 CIA는 추상표현주의를 지원했다. 의도는 이랬다: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선전적 구상화)과 대비해, 미국의 자유로운 예술이 더 선진적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자.

 

〈라이프〉 매거진이 1949년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인가?"라는 제목으로 폴록을 커버 스토리로 다뤘다. 이후 폴록의 그림 가격이 급등했다.

 

폴록이 이 맥락을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적어도 그가 의도적으로 냉전 홍보 도구가 되려 했다는 증거는 없다.

 


 

지금 이 그림을 어떻게 봐야 하나

 

폴록의 그림 앞에서는 무엇을 찾으려 하지 않는 게 좋다. 형태나 의미를 찾으면 없다.

 

그냥 보는 것. 선이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나는지, 색들이 어떻게 겹쳐 있는지.

 

가까이서 보면 물감의 질감이 보인다. 흘러내린 자국, 굳어진 방울. 멀리서 보면 그것들이 전체 패턴을 만든다.

 

그림 보는 방법이 따로 없다는 걸 알려주는 그림이기도 하다. 근데 폴록이 알코올 중독으로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면, 이 자유로움이 좀 다른 각도로 보인다.

 


 

※ 이미지 출처

- Vassily Kandinsky, Composition 7, 1913, Tretyakov Gallery.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 (Jackson Pollock의 드리핑 회화는 저작권 관계로 미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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