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n Egyptian Peasant Woman and Her Child (1869–70) — Léon Bonnat
▲ Portrait of a Woman with a Man at a Casement (ca. 1440) — Fra Filippo Lippi
▲ Portrait of a Woman in Gray (ca. 1865) — Edgar Degas
▲ Hermann von Wedigh III (died 1560) (1532) — Hans Holbein the Younger
목차

1. 지옥문의 꼭대기
2. 처음 이름은 '시인'이었다
3. 왜 근육질 남성이 생각하는가
4. 로댕의 작업 방식
5. 세계 각지에 있는 생각하는 사람들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의 〈생각하는 사람(Le Penseur)〉은 단독 조각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원래 다른 맥락에서 만들어졌다. 더 큰 작품의 일부였다.
〈지옥문(La Porte de l'Enfer)〉이라는 거대한 청동 문의 꼭대기에, 지옥 장면을 내려다보는 인물로 처음 등장했다.
지옥문의 꼭대기
1880년, 프랑스 정부는 로댕에게 새로 지을 장식미술관의 정문 제작을 의뢰했다. 로댕은 단테의 《신곡》지옥편을 주제로 설계했다.
문의 크기는 높이 6미터, 폭 4미터. 186개 이상의 인물이 조각됐다. 공식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채 로댕이 사망했다. 사후에 유족과 프랑스 정부가 여러 캐스팅을 만들었다.
〈생각하는 사람〉은 원래 문 위쪽 중앙에 앉아 지옥을 내려다보는 인물이었다. 단테 자신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죄인들이 고통받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그것에 대해 쓰는 시인.
독립 조각으로 만들어진 건 1882년 이후였다.
처음 이름은 '시인'이었다
처음에는 '시인(le poète)'이라고 불렸다.
단테가 지옥을 내려다보며 시를 쓰는 장면이라는 해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생각하는 사람'으로 이름이 바뀐 건 독립 조각으로 전시되면서였다. 맥락이 사라지고 보편적인 인물로 해석됐다.
▲ 오귀스트 로댕, 〈생각하는 사람〉, 1903년 확대 주조, 파리 로댕 미술관 소장.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생각하는 사람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지옥을 목격한 시인의 고뇌인가. 아니면 그냥 생각하는 누군가인가.
왜 근육질 남성이 생각하는가

서양 회화와 조각에서 근육질 남성은 주로 행동하는 인물이었다. 전쟁, 운동, 노동.
로댕은 그 몸에 '생각'을 넣었다.
턱을 손에 괴고 있다. 몸 전체가 앞으로 기울어져 있다. 어깨와 등이 긴장되어 있다. 생각은 몸 전체로 하는 일이라는 것처럼 보인다.
로댕은 철학자나 학자를 마른 노인으로 표현하던 관습을 깼다. 지성은 강한 몸에도 있다. 육체와 정신은 나뉘지 않는다.
로댕의 작업 방식
로댕은 파리 국립미술학교(에콜 데 보자르) 입학 시험에 세 번 떨어졌다. 당시 학교는 신고전주의 양식을 강요했다. 로댕의 작풍이 맞지 않았다.
독학으로 공부했다.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877년 〈청동 시대〉를 발표했을 때 비평가들은 "실제 인간에서 석고를 떴다"고 비난했다. 너무 사실적이었기 때문이다. 조각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로댕은 이 논란으로 오히려 유명해졌다.
카미유 클로델은 로댕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다. 뛰어난 조각가였다. 로댕과의 관계로 인해 예술 활동이 제한됐고, 나중에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됐다. 30년을 그곳에서 보내다 사망했다. 로댕의 그림자가 그녀의 삶을 가렸다는 평가가 오늘날 미술사에 있다.
세계 각지에 있는 생각하는 사람들
〈생각하는 사람〉의 주조본은 전 세계에 28개 이상 있다.
파리 로댕 미술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필라델피아 미술관, 서울 로댕 갤러리. 국내에도 있다.
원본은 로댕 사후 프랑스 정부가 공식 주조한 것들이다. 로댕 미술관은 주조 과정을 엄격히 관리한다.
여러 곳에 있어서 생각하는 사람이 '흔해 보인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실물 앞에 서면 크기가 다르게 느껴진다. 높이 약 186cm. 사람보다 약간 크다. 턱을 괸 손과 기울어진 어깨가 눈높이에 온다.
※ 이미지 출처
- The Thinker, Auguste Rodin, 1903 cast, Musée Rodin, Paris.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관련 글: [잭슨 폴록. 바닥에 쏟아부은 그림](링크) | [미켈란젤로 천지창조](링크)
6. 지옥문의 일부. 〈생각하는 사람〉의 원래 위치

〈생각하는 사람〉은 원래 독립된 조각이 아니었다. 로댕의 대작 〈지옥문〉의 일부였다. 〈지옥문〉은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은 높이 6미터의 청동 문으로, 1880년에 의뢰받아 죽을 때까지 완성하지 못했다. 이 문의 중앙 상단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는 인물이 원래의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 위치를 알면 이 조각이 다르게 읽힌다. 단테가 지옥을 내려다보는 장면, 또는 단테를 서사시로 만든 시인 자신이 자신의 창조물을 내려다보는 장면이다. 골똘히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죄악으로 가득한 지옥을 목격하며 괴로워하는 것이다. 이 맥락을 알고 보면 조각에 담긴 긴장감이 다르게 느껴진다.
로댕은 나중에 이 인물을 독립된 조각으로 확대했다. 원래 70cm였던 것을 180cm의 대형 청동상으로 만들었다. 독립된 작품으로서의 〈생각하는 사람〉은 특정 내러티브에서 분리됐다. 그래서 '생각하는 사람 일반'이 됐다. 철학적 사색, 창의적 고뇌, 인간 지성의 상징으로 읽히게 된 것은 이 독립 이후다.
7. 로댕의 방법. 인체를 보는 방식의 혁신
로댕 이전의 조각은 이상화됐다. 고대 그리스 조각의 영향으로, 조각 속 인체는 완벽하고 균형 잡힌 것이어야 했다. 근육은 정확하게 표현되되, 결점 없이 아름다워야 했다. 로댕은 이것을 거부했다.
로댕의 인체는 움직이고, 비틀리고, 긴장한다. 표면은 거칠고 손자국이 남아 있다. 그것이 생동감이라고 로댕은 생각했다. 완벽하게 다듬어진 표면보다 화가의 손이 느껴지는 표면이 더 살아있다. 미완성처럼 보이는 것들이 오히려 더 강력한 느낌을 준다는 것을 로댕은 알았다.
〈생각하는 사람〉의 근육을 보면 실제 인체 해부학보다 과장됐다. 등 근육, 팔 근육이 실제보다 더 두드러지게 표현됐다. 이것은 내면의 긴장을 신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생각하는 행위가 이렇게 신체적으로 힘든 것임을 근육의 긴장으로 보여준다. 조각이 심리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8. 세계 각지의 〈생각하는 사람〉
〈생각하는 사람〉은 여러 점의 청동 주조본이 있다. 로댕이 살아있을 때 제작된 것, 사후에 그의 재단이 승인한 에디션 주조본들. 현재 전 세계 주요 미술관과 기관에 약 28점의 공인 주조본이 있다.
파리 로댕 미술관의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유명하다. 정원에 설치되어 있어 야외에서 볼 수 있다. 다른 조각들과 함께 로댕이 살았던 저택의 정원에 배치되어 있어, 그 맥락 안에서 보는 것이 가장 의미 있다.
2000년 한국 서울에서 열린 조각 전시에서 〈생각하는 사람〉이 테러를 당했다. 폭탄으로 다리 부분이 파손됐다. 수리 후 돌아갔지만 그 사건이 조각의 물리적 취약성을 상기시켰다. 아이디어는 영원할 수 있지만, 그 아이디어를 담은 물질은 파괴될 수 있다.
9. 로댕과 카미유 클로델

로댕의 삶에서 카미유 클로델의 존재는 중요하다. 클로델은 로댕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다. 그녀 자신도 뛰어난 조각가였다. 두 사람의 관계는 깊었지만 로댕은 오랜 연인 로즈 뵈레를 떠나지 않았다. 클로델은 결국 로댕과 헤어졌고, 이후 정신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클로델은 1913년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1943년 사망까지 30년을 거기서 보냈다. 가족들이 퇴원을 막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로댕은 1917년 사망했는데, 클로델이 퇴원하지 못한 기간 동안 그에게 면회를 간 기록이 없다. 그 관계의 그늘이 클로델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10. 생각하는 사람의 크기들
〈생각하는 사람〉은 여러 크기로 주조됐다. 원래 지옥문을 위한 소형 버전, 후에 제작된 실물 크기, 더 큰 기념비적 버전. 각 크기가 다른 감각을 준다. 소형 버전은 책상 위에 올려놓을 수 있다. 실물 크기 앞에 서면 그 무게가 다가온다.
세계 여러 곳에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파리 로댕 미술관의 정원,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앞,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복수의 에디션이 세계에 퍼져 있는 것이 이 조각의 특징이다. 로댕은 생전에 여러 주조를 허용했고, 사후에도 계속 만들어졌다. 하나의 원본이 아니라 여러 본체가 있는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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